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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없는 계절》(2026)
지선경
계절이 달라진 날
특별할 것 없는 어느 날이었다. 길을 걷다 계절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뭇잎의 색은 미세하게 변해 있었고, 공기는 전과 다른 밀도로 몸에 닿았다. 이전 계절의 기운이 아직 남아 있는 사이로 다음 계절이 잠시 스쳐간 듯했다. 그때 문득, 우리는 계절이 돌아왔다고 말하면서도 왜 계절이 늙어간다고는 말하지 않는지 궁금해졌다. 같은 계절이 돌아왔다고 말하지만, 이미 사라진 꽃과 새로 피어난 꽃이 다르고, 빛의 각도와 습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몸의 상태도 달라져 있었다.
그 무렵 나는 내가 변화를 받아들이는 속도와 바깥의 압축된 리듬 사이에서 자주 어긋남을 느꼈다. 계절과 장소의 변화도 전과 다르게 다가왔다. 이런 생각들은 한동안 나란히 머물렀고, 그러다 ‘나이없는 계절’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오래전의 장면과 막 도착한 변화가 달력의 순서와 다르게 몸 안에서 겹치는 느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엇갈리는 시차, 변화가 머무는 표면
어떤 공기는 오래전의 장면을 불러오고, 어떤 빛은 방금 스쳤는데도 이미 몸 안에 머물러 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그때 떠오른 장면은 과거의 모습 그대로가 아니라, 지금의 장소와 몸을 통과하며 조금 달라져 있었다. 나는 낯설면서도 익숙한 그 차이에서 작업을 시작한다.
나의 작업은 내가 머물렀던 장소들의 서로 다른 속도와 함께 움직여왔다. 베를린의 다층적인 리듬, 한국 소도시의 느린 공기, 서울의 압축된 속도는 각각 다른 편차와 잔상을 남겼다. 그곳을 떠난 뒤에도 장소의 감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어느 날의 빛이나 냄새, 표면의 질감과 만나 다시 나타나곤 했다. 그때 떠오른 색과 질감, 형태를 따로 기록하고 다시 배열했다. 재료를 자르고 오리고 겹치는 동안 장면은 처음의 모습에서 멀어졌고, 형태와 형태 사이에는 새로운 간격이 생겼다. 레진이 흐르거나 굳으면서 생긴 자국, 여러 번 덧칠한 색, 껍질과 그림자를 한 장면 안에 함께 놓았다.
산책하던 중, 주변 식물들이 마르고 빛을 잃어가는 겨울에도 선명하게 붉은 피라칸사스 열매를 보았다. 계절의 쇠잔과 무관한 듯 남아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그 열매들을 채집해 전시장 입구에 놓았다. 같은 나무에서 같은 날 채집했지만, 가지에서 떨어져 나온 열매들은 서로 다른 속도로 수축하고 색이 달라졌다. 일부는 평면 작업의 재료가 되었다.
흩어진 빛의 별자리
평면 작업에서는 빛과 색, 선과 재료의 밀도가 화면 안에서 잠시 모이는 장면을 만들었다. 〈TC, Transient Constellations〉(2025–) 연작은 지나가는 빛의 방향과 손의 속도, 레진이 흐르고 굳으며 생기는 표면의 변화에서 시작되었다. 각각의 화면은 한 날의 습도와 다른 날의 빛, 여러 차례의 손 움직임이 겹치는 과정을 지나 만들어졌다. 한 화면 안에도 서로 다른 날에 생긴 자국이 함께 남아 있다. 이 작업을 진행하면서 나는 유동하는 별자리를 떠올렸다. 서로 다른 거리와 시간에 놓인 빛을 하나로 이어 바라보는 방식이 화면 안의 요소들을 배열하는 과정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선과 면, 작은 색의 조각과 자국을 붙이거나 떨어뜨리면서, 잠시 이어져 있지만 언제든 다시 흩어질 수 있는 상태로 두었다.
외피에 머무는 신호들
입체 작업에는 멜론이 연두에서 노란빛으로 옮겨가는 사이의 색, 딸기가 붉어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색, 보호의 기능을 다한 껍질과 포장재, 늦게 도착한 그림자를 가져왔다. 나는 색을 장식하기보다 변화 중에 포착한 한 지점을 알리는 신호로 사용했다.
〈흐르다 만 그늘〉(2025)의 팔각 구조에는 멜론의 표면에서 발견한 연두빛을 여러 층으로 칠했다. 구조의 내부에서 파생한 그림자는 레진으로 굳혀 바닥에 놓았다. 바닥의 형태는 그림자이면서 흐르다 멈춘 과즙처럼 보였고, 굳은 레진의 표면에는 흐르던 방향이 남았다.
〈익지 않은 신호〉(2025)는 와인 오프너의 나선형 스크루와, 반복된 원의 일부를 지워 만든 물결선 사이의 형태적 유사성에서 시작되었다. 스크루를 본래의 쓰임에서 떼어내 거꾸로 세우고, 그 위에 딸기가 붉어지는 과정에서 발견한 색을 입혔다. 기능에서 이탈한 구조와 변화 중인 색을 하나의 신호처럼 놓았다.
〈보호 이후〉(2026)는 생명이 빠져나간 타조알 껍질과 이동과 보존에 사용되었던 포장재, 금속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다. 타조알 껍질 위에는 포도를 떠올리며 고른 색을 입혔다. 무언가를 감싸고 운반하던 사물들을 본래의 쓰임에서 떼어낸 뒤, 외피와 금속 봉, 작은 조각들 사이의 거리와 방향을 다시 조정했다.
한 공간에 놓인 장면
전시장에는 서로 다른 날에 생겨난 평면 작업과 입체 구조, 레진으로 굳힌 그림자와 피라칸사스 열매를 함께 놓았다. 작품의 거리와 높이, 방향을 바꾸어보며 빛과 그림자, 작품 사이의 빈 공간을 조율했다.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입구의 피라칸사스는 계속 마르고 색이 달라졌으며, 레진으로 굳힌 그림자는 같은 자리에 머물렀다. 변화하는 열매와 굳어진 표면, 서로 다른 날의 빛과 색이 한 공간에 놓이면서 《나이없는 계절》의 장면이 만들어졌다.
※ 《나이없는 계절》의 ‘나이없는’은 ‘나이 없는’을 의도적으로 붙여 쓴 조어이다.
《흰 오리는 풀과 바람 사이를 지나며 겹친 원 속에서 이동하는 태양처럼 싱싱한 딸기를 그린다》(2024)
지선경
2024년 사루비아에서 열린 개인전 《흰 오리는 풀과 바람 사이를 지나며 겹친 원 속에서 이동하는 태양처럼 싱싱한 딸기를 그린다》는 Sarubia Outreach & Support(SO.S)*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2023년부터 2024년까지 이어진 대화와 고민, 작업의 축적을 바탕으로 구성되었다. 당시 나는 오랜 해외 체류를 마치고 국내 미술계의 환경과 네트워크를 새롭게 접하던 시점에 있었고, 드로잉과 입체, 설치를 오가는 작업이 기존의 매체 구분 안에서 어떻게 읽힐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전시는 완성된 결과를 제시하기보다, 작업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 안에서 일어난 조형적 이동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SO.S 과정에서 나눈 대화 가운데 중요하게 남은 제안은 작품을 가능한 한 벽에 걸지 않는 방식으로 생각해보자는 것이었다. 일부 드로잉과 프레임이 열리는 작업 〈이동하는 태양〉(2024)을 제외하면, 전시는 벽을 작품의 배경이나 지지대로 사용하는 익숙한 방식을 피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처음에는 하나의 조건처럼 주어진 제안이었지만, 오히려 작업을 풀어내는 계기가 되었다. 벽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들은 바닥과 통로, 틈과 높이 사이에서 다른 관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전시는 평면을 배열하는 일보다 공간 안에서 형상이 증식해가는 일에 가까워졌다.
전시는 하나의 대표작이나 중심 서사를 향해 나아가지 않았다. 지난 몇 년간 이동하며 작업하는 동안 남겨진 조각들이 한 공간 안으로 들어왔고, 서로 겹치고 지탱하고 비켜서며 임시적인 장면을 만들었다. 어떤 것은 이전 작업의 일부였고, 어떤 것은 미처 작품이 되지 못한 채 남아 있던 재료였으며, 또 어떤 것은 특별한 목적 없이 작업실 주변을 맴돌던 색과 형태였다. 나는 서로 다른 시간에 생겨난 것들이 한순간 맞물리며 하나의 풍경처럼 보이는 상태에 주목했다.
설치는 사전에 조율된 계획에 따라 작품을 옮겨놓는 방식과는 조금 다르게 진행되었다. 열흘 동안 사루비아 공간에 머물며 벽의 높이와 통로의 방향, 건축적 여백을 살폈다. 제작해온 작품과 여러 요소를 공간에 연결해보고, 전시장을 작업실처럼 사용하며 작품과 조각들로 그 안에 스케치해나갔다. 이미 만들어진 요소들은 다시 배치되고 조정되었으며, 일부는 현장에서 새롭게 만들어지거나 변형되었다. 임시적인 질서를 찾아가는 과정은 고단했지만, 동시에 이상한 해방감과 즐거움을 주었다. 처음부터 구조를 세워놓고 즉흥적으로 변주한 것이 아니라, 옮기고 멈추고 다시 보는 동안 즉흥 자체가 조금씩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작품들은 독립된 오브제로 머무르기보다 공간의 조건에 반응하며 관계를 넓혀갔다. 하나의 작품이 다른 작품의 배경이 되기도 했고, 멀리 떨어진 조각들이 시선의 이동 속에서 잠시 한 덩어리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느 위치에서는 한 작품이 중심에 놓인 듯했지만, 자리를 옮기면 그 중심은 곧 다른 요소로 이동했다. 고정된 대표작이 있는 대신 여러 조각이 공간 안에서 각기 다른 속도로 움직이며 잠시 중심을 만들었다가 다시 흩어졌다. 내가 붙잡고자 한 것은 개별 작품의 완결성을 넘어, 서로 다른 것들이 함께 놓였을 때 전체가 작동하는 모습이었다.
현장에서 조각들을 옮기고 다시 바라보는 동안, 나는 이전 작업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을 되풀이해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동안 나는 일상의 속도와 빛, 공기와 기호에서 생겨나는 미세한 편차를 하나의 지각 단위로 읽어왔다. 그것들은 드로잉과 콜라주, 입체와 설치를 넘나들며 조형적 모듈로 전환되었다. 이때 공간은 감각의 단들이 스치고 겹쳐지는 가변적인 캔버스가 된다. 관람자는 정해진 동선 없이 각자의 속도로 공간을 탐색하고, 흩어진 단위들이 만들어내는 리듬과 단서를 스스로 재배열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전시는 감각과 구조가 부딪치며 생겨나는 장면을 통해, 보는 위치와 움직임에 따라 관계가 어떻게 다시 구성되는지를 살펴보는 환경적 실험이기도 했다.
전시에 등장한 작품들은 〈겹친 원〉, 〈Everyday〉, 〈이동하는 태양〉, 〈싱싱 딸기〉, 〈언 물〉, 〈밤이 길을 지운다〉, 〈여왕벌 윙윙〉, 〈흰 오리〉, 〈노란 방〉, 〈황금빛 벌통〉 등의 제목을 지니고 있다. 이 제목들은 특정한 대상을 먼저 상정하거나 그것을 재현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 아니었다. 태양을 상징하려 한 것도, 딸기나 여왕벌, 흰 오리를 묘사하려 한 것도 아니었다. 작업은 서로 다른 시간에 남겨진 색과 조각, 표면과 기하학적 파편에서 출발했다. 이 잔여물들이 어느 순간 맞물려 낯익은 형상으로 응집되면, 언어는 이미 일어난 조형적 사건의 주변에서 불현듯 붙잡힌 하나의 __처럼 다가왔다. 때로는 그렇게 찾아온 말이 조각들이 서로 관계를 맺는 데 영향을 주기도 했다.
전시 제목 역시 개별 작품의 제목들을 이어 붙여 만든 문장이다. 문법적으로는 조금 어긋나 있지만 이미지로는 작동하는 문장, 말이 되는 듯하면서도 끝내 닫히지 않는 문장이다.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단어들이 한 문장 안에서 부딪치고 미끄러지다가 다시 이어지는 모습은 당시 작업과 전시가 만들어지던 과정과 닮아 있었다. 하나의 문장이 먼저 놓이고 그에 맞추어 전시를 구성한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시간에 생겨난 제목들이 한곳에 모이면서 뜻밖의 문장이 나타났다. 그 불완전한 연결 자체가 전시의 형식이 되었다.
《흰 오리는 풀과 바람 사이를 지나며 겹친 원 속에서 이동하는 태양처럼 싱싱한 딸기를 그린다》는 서로 다른 시간에 남겨진 조각들이 한 공간에서 다시 관계를 맺는 장면이었다. 작업은 무엇을 그렸는가보다 어떤 조각들이 어느 순간 서로를 알아보았는가에 가까웠다. 그 만남 속에서 색과 형태, 간격과 방향은 잠시 하나의 풍경을 이루었고, 관람자의 위치와 움직임에 따라 다시 다른 관계로 흩어졌다.
* **Sarubia Outreach & Support(SO.S) B 그룹은 서울 중심의 미술계 시스템 안에서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혹은 오랜 해외 체류 이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작가들이 겪는 소통의 한계와 고립감을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화와 비평, 포트폴리오 리뷰, 워크숍 등을 제공하는 작가 지원 프로그램이다. 본 전시는 단순한 전시 후원이 아니라, 이러한 과정에서 이어진 대화와 작업 연구의 연장선에서 마련되었다.
관련 노트: 「즉흥이 구조를 향해 움직이는 방식」, SunlitNotes; 「자유연상, 퍼즐」, SunlitNotes, 2025; 「이동하는 태양: 서랍과 기억의 표면」, SunlitNotes,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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