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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리듬의 안무: 설치 작업에 관하여 (2025)
지선경
설치 작업은 기억의 잔상과 닮아 있다. 기억은 손에 쥘 수 있는 물건으로 남지 않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사라지지도 않는다. 어떤 장면과 빛, 공기의 밀도는 시간이 지난 뒤에도 몸 어딘가에 각인되어 불쑥 되돌아온다. 한정된 시공간 안에서만 존재하다가 전시가 끝나면 해체되는 설치 작업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은 물성을 남기기보다 어떤 순간을 통과하게 하는 경험의 형식으로 존재한다. 붙드는 동시에 놓아주는 일,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한동안 존재하게 만드는 일이다.
독일 예술대학교 시절, 입체와 설치를 다루던 반에서 우리가 자주 이야기했던 것은 결국 공간과 시간의 문제였다. 작업이 공간 안에서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관객이 어떤 거리에서 그것을 만나는지, 과정의 흔적들이 어떻게 하나의 장면으로 조직되는지에 대해 오래 토론했다. 그때 설치는 유용한지 무용한지를 먼저 따지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냥 하나의 형식으로 존재했다.
특히 2013년 여름의 과제전은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당시 나는 흙으로 만든 수건 형태를 설치의 요소로 사용했다. 전시 기간 내내 그것이 마르지 않도록 분무기로 물을 뿌리며 돌보았고, 전시가 끝난 뒤 그것들은 모두 부서졌다. 그때의 나는 소멸을 견디지 못해 테라코타로 구워 보존할 방법을 고민했다. 그런데 교수는 이 작업의 핵심이 형태의 보존이 아니라 시간성에 있다고 말했다. 그 작업은 오래 남기 위한 것이 아니라, 흐르는 시간 속에서 잠시 어떤 상태로 존재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이 경험 이후, 설치의 무용함을 쓸모없음과는 다른 의미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효율의 기준 안에서 쉽게 설명되지 않는 시간성과 현장성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실제 미술 현장의 시스템을 마주했을 때, 이 시간성과 현장성은 자주 부담으로 환산되었다. 전시는 대체로 작품을 보여주고 판매나 소장으로 이어지는 구조 안에서 움직인다. 반면 설치 작업에는 반입과 인력, 유지 관리와 해체가 필요하다. 전시 기간이 짧은 경우에는 그 과정 전체가 감당하기 번거로운 형식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사실 나에게도 설치는 매번 어렵고 고단한 과정이다. 설치가 가진 얼마간의 무용함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려 하지만, 막상 전시가 끝나고 모든 것을 부수고 철수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그 사라짐을 피하지 않는 방식 안에서 설치 작업이 가진 이상한 힘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오래 남기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주어진 시간 안에서 더 정확히 존재해야 하는 것들. 장소와 조명, 동선과 간격 속에서만 잠시 드러나는 관계들.
그래서 큰 구조와 방향은 미리 준비하되, 가능한 조건 안에서는 현장에서 조율할 수 있는 여백을 남겨둔다. 전시장에 머무를 시간과 설치 과정의 자유도가 주어질 때, 도면 위에서는 식별할 수 없는 관계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오직 공간 안으로 들어가 몸으로 맞닥뜨려야 확인할 수 있는 관계다.
2024년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에서 열린 개인전 《흰 오리는 풀과 바람 사이…》는 이 방법론을 시험한 무대였다. 당시 나는 작품과 유닛의 대부분을 작업실에서 준비한 채 전시장으로 향했지만, 그것들이 어떤 관계를 이루며 하나의 장면이 될지는 정해두지 않았다. 열흘이라는 설치 기간 동안 사루비아에 머물며 공간의 건축적 요소들을 살폈고, 무관해 보이던 종이 조각과 오브제의 파편들을 공간 구조와 맞물리게 했다. 이질적인 요소들이 서로를 지탱하며 균형을 이루는 임계점을 찾고, 흩어진 파편들을 하나의 구조로 응집시키는 과정이었다.
2026년 아트사이드 템포러리에서 열린 《나이없는 계절》은 여기에서 다른 방향으로 이어졌다. 이전 전시가 응집의 임계점을 찾는 과정이었다면, 이번에는 물질과 파편을 하나의 팔레트처럼 펼쳐놓고 덩어리가 되기 전과 후의 상태를 공간 위에 느슨하게 드로잉하듯 연결했다. 전시장 안에서는 벽과 바닥의 비율, 작품 사이의 간격, 빛이 들어오는 방향에 따라 예상하지 못한 선들이 떠올랐다. 나는 사물들 사이에 생겨나는 보이지 않는 인지적 선을 따라 배치를 미세하게 조율했다.
어떤 유닛은 조금 더 전면으로 나와야 하고, 어떤 요소는 살짝 비켜서야 한다. 또 어떤 빈자리는 그대로 두는 편이 낫다. 이러한 판단은 미리 세운 규칙보다 공간을 걷고, 물러서서 바라보고, 다시 가까이 다가가는 동안 조금씩 구체화된다.
설치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공간 안에서 사물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스코어를 읽고 조율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작품을 옮기고, 물러서고, 다시 걷고, 방향을 바꾸는 과정은 현장에서 발생하는 즉흥적인 안무와 닮아 있다. 독립된 사물들은 공간에 들어오는 순간 각자의 박자와 간격을 갖기 시작한다. 어떤 흐름은 늦추고, 어떤 곳은 열어둔다. 지나치게 설명되는 부분은 덜어낸다. 작품을 놓는 일이면서 동시에 작품들 사이의 속도를 맞추는 일이다.
설치는 사물들 사이의 공백에서 아직 보이지 않던 형태를 발견하는 관계의 작업이다. 동일한 작품도 다른 공간과 빛을 만나면 새로운 간격과 리듬을 얻는다. 전시가 끝나면 그 관계는 해체되고, 물리적인 요소들은 다시 흩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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